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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포레스트해석 누구나 자신의 작은 숲을 가꾸며 살아간다

리틀포레스트해석


리틀 포레스트 (2019)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힐링 영화’ 일 것이라 생각했다.
힐링이 필요했으면 영화를 알게되자마자 바로 봤겠지만 당시 난 더 바쁘고 쉴 새없이 움직이고 싶었다.
바빠서 지쳐버린 순간 힐링이 필요해가 아닌 더 바쁘고 더 달리고 싶고 그게 그 당시 내겐 기쁨을 주는 힐링이라 느꼈다.

 

바쁘게 굴러가던 사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정지되고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은 무급휴가를 받고, 열심히 고등학교 3년을 달려 보상처럼 대학 새내기들은 꿈꾸던 캠퍼스 라이프를 포기하게되고, 대학생이며 초중고학생들 또한 점점 미뤄지는 대면 개강과 개학을 보며 한 학기 마음을 접고 있었다. 재해로 무력한 사회 속 나 또한 점점 힘이 없어져갔다.

 

 

말로 듣던 ‘번아웃’ 시기가 이런걸까 생각했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떠나고싶기도, 재미난 걸 보고싶기도, 당장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며 초조했다.

그러던 중 지금 내 상황과 반대로 평화로운 이 영화 포스터가 떠올라 보게되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힐링영화가 맞다.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고 힐링이 된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깊고 좀 더 짙다. 포근하다.

 

내게 정말 소중한 영화가 된 리틀 포레스트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리뷰를 적어보려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혜원(김태리)이 취준하다 지쳐 본가로 내려오며 시작된다.

당시는 한 겨울로 눈이 소복히 쌓여있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 혜원의 지치고 우울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화면이라 생각했다.

영화는 겨울 - 봄- 여름 - 가을- 다시 겨울로 한 계절을 보내며 진행된다.

 

가장 인상깊었던 신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 혜원과 친구들이 보내는 봄을 묘사한 신이다.
영화 내 계절이 노랑 초록 푸르게 물든 봄으로 바뀌며 눈이 펑펑 오던 겨울 신과 대비된다.

 

"봄에 가장 먼저 심는 것은 감자.

날이 다 풀리지 않아 이르다 느껴도 감자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맞는다.

이 모든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타이밍. 기다려야 결실을 볼 수 있다. "

 

"기다려. 기다려야 결실을 볼 수 있어"


혜원의 독백에서 혜원의 엄마 독백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어린 혜원이 엄마에게 배우던 걸 어른 혜원이 행하고 있다는 것..

혹은 바쁘게 달려온 혜원에게 건네는 위로일 수도 있다.

 

제목이 갖는 '리틀 포레스트'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포레스트를 갖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작은 숲을 물도 주고 가꾸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때론 울고 삭막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시 축복을 내려 풍성하게 가꿔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타이밍에 대한 말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타이밍 속에 살아간다.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타이밍부터 대입의 순간, 취직의 순간 등 여러 결정과 타이밍 속 바쁘게 살아간다.

 

 

혜원이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지쳐 본가로 내려오면서 서울에서 고시 준비할 때보다 편안한 삶을 보여준다.

눈으로 덮여 있던 집에서(겨울) 감자를 심고(봄) 토마토를 심고(여름) 벼를 가꾸며(가을) 계절을 보내는 혜원을 함께했다. 

왜 갑자기 내려왔냐는 친구 은숙의 말에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맞다. 혜원은 정말 서울에선 편의점 알바 후 폐기음식을 먹다가

본가에선 직접 쑥도 캐고 직접 떡도 만들고 배추를 캐 배추전도 해 먹으며 보는 사람 마음도 따뜻하게 만드는 식사를 한다. 그렇게 혜원 자신을 돌보고 그가 있는 마을도 가꾼다. 감자를 심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누리기도 하며 혜원의 시각에서 바라본 마을을 돌본다.

 

이는 혜원이 고시 준비하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것과 동시 생각정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되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혜원은 아무생각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아무 생각하지않고 돌보는 것만으로 혜원은 자신의 포레스트를 가꾸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로 힘들 때 지칠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또는 열심히 달려왔으나 다 놓고 싶을 때 등.. 흔히 번아웃이라 불리는 그 순간들에는 분명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텃밭에 물을 주고 빛을 주는 것처럼 자신이란 포레스트에도 사랑을 주고 휴식이 필요하단 말이다. 돌보는 것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나로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보드 타기,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손이 가는 대로 그림 그리기가 있다. 아마 혜원은 매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것 아니었을까. 이 영화에서 음식을 만드는 신은 정말 따뜻하다. 정적이면서 부드러운 화면은 보고 있는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듯한 느낌을 준다. 수제비, 오색떡, 열무국수, 크림 브륄레, 오코노미야끼, 막걸리, 단밤 등 혜원은 계절마다 자신을 채워주는 음식을 만들고 잘 먹으며 자신을 돌본다.

 

 

가을쯤 혜원은 친구 재하의 과일농장을을 돕는다. 도와주는 김에 더 많이 도와주란 재하의 말에 혜원은 고모 농사 일도 도와야 하고 곶감도 만들어야 하고 너무너무 바쁘다며 웃었다. 그런 혜원에게 재하는 웃으며 언제는 곧 다시 서울 간다 간다 하더니..

 

"그렇게 바쁘게 살면 문제가 해결이 돼?"

 

재하의 말을 듣고 혜원은 잊고있던 문제를 떠올린다. 서울에서 바쁘게 달려오다 도망치듯 내려왔던 본가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뭔지, 해결해야 할 일이 뭔지, 정리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한다. 이 날 마을엔 혜원의 마음을 대변하듯 큰 번개와 비가 내린다. 재하의 과일농장도 혜원 고모의 논도 자연 앞에 무력해졌다. 마치 재하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소용돌이가 인 혜원의 상황과 닮아있었다.

 

"이렇게 주무르다보면 겨울쯤에는 진짜 부드러운 곶감이 되거든.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

 

혜원은 어릴 적 겨울, 엄마가 곶감을 지붕에 매달며 해준 말을 떠올렸다. 그 후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정리를 하고 다시 본가로 내려오게 된다.

 

혜원 엄마의 말처럼 겨울이 와야 부드러워진다. 힘들고 우울한 시기가 오고 난 후에야 비로소 버텨내는 힘이 생기고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다는 말처럼 겨울을 보내고 나면 앞이 보인다. 한 곳을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면 옆을 잊는다. 지치고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오고 힘듦을 느낄 때, 그리고 잠시 물러나 보면 그제야 보인다. 길은 앞만 있는 게 아니었고 가려던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길이 보인다. 부드러워지고 유해진다. 또다시 비슷한 겨울이 오면 물렁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맛보기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우울의 늪으로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을 가꾸고 생각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돌보다 보면 어느새 그 숲은 새싹이 나게 되어 있다. 새싹이 나지 않아도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종의 새싹을 틔우거나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영화는 혜원을 중심으로 혜원의 포레스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혜원이 맞는 두 번째 겨울은 영화 초반의 겨울보다 따뜻하다. 아마 본가에 내려와 마을을 가꾸는 1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은 거라 할 수 있겠다. 마을을 가꾸기도 했지만 이 마을은 곧 혜원의 마음이자 혜원의 포레스트였다. 혜원이 꼬박꼬박 해 먹던 음식, 그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 친구들과 나눈 대화,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준 말을 회상하던 것 등 모든 것이 곧 혜원이 숲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당신을 돌보고 있는지, 당신의 숲은 건강한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말한다.

 

당신의 작은 숲은 그 숲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소중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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